공설극장 또는 실외극장
엘리자베스 시대 공설극장은 곰 놀리기 원형 마당 또는 여인숙 앞마당이 공연을 위해 개조되면서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인숙 앞마당의 경우, 여인숙 구조물로 둘러싸인 앞마당 공터가 공연 공간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설극장은 공연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며, 성인 전문극단들이 주로 사용한 극장이었다.
제임스 바버지(James Burbage, 셰익스피어 시대의 최고의 배우로 꼽히는 리처드 버비지의 아버지)가 1567년 영국 최초로 붉은 사자 극장이라는 실외극장을 운영했다.
공설극장들은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런던 시계 남쪽과 북쪽 외곽에 터를 잡았는데, 그 이유는 런던의 성직자들이 연극을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 반대하면서, 런던 시내에서의 공연을 금했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에는 델리자베스 여왕을 위시하여 귀족들과 수많은 평민신분의 시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연극을 옹호했다. 여왕과 귀족들은 연극관람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궁전이나 귀족의 성 안에서 상연된 공연물에 비용을 대주는 방법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재정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시어터 극장(the Theatre, 1576) 커튼 극장(the Curtain, 1577), 그리고 레드 불 극장(the Red bull, 1605), 등은 시 외곽 북쪽에 터를 잡았고, 스완극장(the Swan, 1595), 그리고 호프극장(the Hope, 1614)등은 템스 강 남쪽에 터를 잡았다. 가장 유명했던 공설극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데, 그것은 챔벌리 극단 전용의 글로브극장(the Glove Theatre, 1599)이었다.
-> 여기서 글로브 극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극장과 같은 곳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공설 극장 객석 규모는 1,500~3,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더 많은 관객을 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설극장의 관객석
공설극장에 모인 관객들은 등급에 다라 각각 피트석, 박스석, 그리고 갤러리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극장 건물을 둘러싼 갤러리 구조물은 보통 3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의 맨 아래층은 박스석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 귀족용(lords' rooms)으로 알려진 공간이었으며, 부유층들이 주로 사용했다. 또한 극장의 한가운데인, 무대 정면과 측면은 야드(yard)라고 알려진 서서 구경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곳에서 서서 구경을 하는 하층민들은 그라운들링(groundling)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시대 극장에서의 특이점은 공연 직전부터 공연이 지행 되는 동안, 관객들은 자유롭게 음식 및 음료 - 사과, 땅콩, 물, 흑맥주- 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소변용 양동이가 유일한 화장실을 대신하는 시설이었으므로, 일부 관객들은 식음료의 양을 스스로 제한해야 했다. 소변용 양동이조차 여유가 없을 때는 템스 강변까지 걸어가서 용변을 보아야 했다.
타이어링 하우스
일정 높이로 높여진 단상 무대의 뒷부분은 타이어링 하우스(tiring house)라고 알려진 일종의 다용돈 공간으로 그리스 극장의 스케네와 흡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타이어링 하우스는 아마도 3층 구조로 되어 있고 의상을 갈아입는 탈의실이나 또는 소품이나 무대장치들을 보관하는 창고 등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면은 그대로 알리자베스 공설극장의 기본 무대 배경장치가 되는 것이다. 타이어링 하우스에서 등장하여, 그곳으로 퇴장하는 것으로 장면의 전환을 알렸다.
타이어링 하우스 맨 아래층에는 복수의 문이 있었는데, 최소 2개의 문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등퇴장 및 발견공간 그리고 드러내는 공간이 필요했기에) 또한 타이어링 하우스에서 뻗어 나온 지붕은 '천국' 또는 '비호'라고 불렸는데, 이 지붕은 무대면 보호에 제격이었으며, 지붕의 밑면은 '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자리들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설극장
실내의 소규모 극장이며, 600~750명 정도의 관객 수용이 가능했다.
사설(private) 및 공설(public)이라는 용어는 약 1600년경부터 영국의 극장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설극장들은 실내 공간에 촛불과 높은 창문들로 이루어진 극장(이는 무대에 들어오는 조명을 위한 것이다)들이다.
공설극장보다는 조금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기에, 빈곤층은 정책적으로 뿐만 아니라 비싼 입장료 때문에 배제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576년 최초의 사설극장이었던 블랙 프라이어즈(Blackfriars) 극장의 개장에서부터 1608년 경까지 사설극장들은 인기절정의 소년극단의 전용공간이었다. 그 후부터는 리처드 버비지가 이끄는 왕실극단(King's Men)이 점유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실외 극장인 글로브 극장에서 주로 공연을 하고, 동절기에는 실내극장인 블랙프라이어즈 극장에서 주로 공연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설극장들은 런던의 성인 극단들에 의해서 거의 1년 내내 사용되게 되면서, 더욱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무대 배경장치와 의상
엘리자베스 시대 극장들의 무대배경장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다르게 원근화법으로 채색된 배경장치를 사용하지 않았고, 또 단상으로 된 무대도 특정 지역을 나타내주지 않았다. 또한 영국 드라마의 삽화식 구조에는 민첩한 장면 변환이 필수요소였던 관계로 이에 따른 다양한 방식들이 개발되었다.
1. 직접 장면에 필요한 묘사를 대사로 했다
2. 일군의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퇴장하고, 잠시 후 또 다른 일군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전환을 알렸다
3. 특정 장소를 나타내주는 최소한의 소품을 가지고 등장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무대의상은 특이하게도 동시대 영국 복장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관객들은 역사적 고증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나, 다른 종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특정한 전통 의상을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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