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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연극사

프랑스 신고전주의 연극 그리고 몰리에르

by #조디찬 2023. 7. 14.

배경 : 16세기와 17세기의 프랑스
 16세기 프랑스의 사회불안은 신교도 내의 위그노파(Huguenot)와 구교파 세력 간에 벌어진 시민 종교 전쟁에서 야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지루한 내란은 1594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종결되었고,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는 1589년에 즉위할 당시에는 신교도였으나 후에 구교도로 개종했다. 앙리 왕은 비록 신교도는 포기했지만 낭트 칙령을 포고함으로써 종교 분쟁을 종식시켰다. 이것은 혁명적인 선언으로 신교도가 아닌 사람들, 특히 위그노파들에게 프랑스 법령이 인정하는 평등과 관용을 허락했다. 
 이로써 프랑스 사회는 17세기에 마침내 안정과 번영을 이루게 되었는데, 특히 루이 14세가 통치한 1643년에서 1715년까지가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번성기의 예이다.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에 있어 특히 강력한 영향력을 준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그 이유는 루이 13세는 9살에 왕위를 물려받았기에, 실질적으로는 그의 아내인 메디치가의 여인인 마리(Marie)가 프랑스 정치를 통치했으며, 루이 13세의 통치 기간 중 영향력을 행사한 또 하나의 주요 세력은 추기경인 리슐리외로 그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문화를 발전시킨 주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루이 14세도 마찬가지로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여, 리슐리외의 뒤를 이어 추기경이 된 이탈리아 태생의 마자랭(Mazarin)이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조정과 프랑스 문화는 이탈리아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16세기 프랑스 내란과 종교적 불안감 때문에, 주변 국가들보다 르네상스의 유입이 늦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르네상스의 물결이 유입되자, 프랑스에서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 이은 번성기를 맞게 된다. 17세기 중반의 프랑스 연극은 신고전주의적 양식과 이태리풍의 무대디자인을 고수했다. 


신고전주의 이론의 확립


17세기가 시작되면서 프랑스 그근 눈에 띄게 이탈리아 풍에서 벗어나게 된다. 코메디아 델라르테가 극단들은 여전히 프랑스를 순회하며 공연했지만, 그들의 극작과 제작의 측면에서는 고루한 중세극의 영향 등은 더 이상 프랑스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아르디의 작품은 신고전주의적 특징인 시간과 장소, 시간의 삼일 치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극속에서는 장면 효과를 강조한 프로시니엄 아치 극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달리말하자면, 17세기 초 프랑스 연극은 동시대의 스페인과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발전하였으며, 엄격한 신고전주의 이론에 얽매이지 않았다. 프랑스 연극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는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이론을 준수하느냐 마느냐 사이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신고전주의 이론이 승리하여, 극작술, 연극 집필법과 무대 제작 기술 및 디자인 기법 등 연극 무대의 모든 분야를 평정했다. 
 

몰리에르
몰리에르

몰리에르 : 신고전주의 희극


프랑스 신고전주의 작가 중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희극의 대가로 꼽히는 사람은 바로 몰리에르(장 바티스트 포클랭, 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이다. 
몰리에르는 1643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의 이름을 몰리에르로 개명 한 뒤 베자르 집안의 배우들과 함꼐 일뤼스트르 극단을 건립하고, 1645년에 극단이 파산하게 되자 몰리에르는 빚에 쫓겨 투옥되었다. 그리하여 10년 이상 10년 이상 지속된 열악한 재정환경을 맞게 되었고 끝내 극단은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추방된 몰리에르의 극단은 1658년까지 지방 도시에서 공연을 가졌고, 그 시기 몰리에르는 섬세한 연기로 이름 높은 뛰어난 희극 배우 겸 극작가가 되었다. 
 1658년에는 영향력 있는 후원자가 극단을 위해 왕실 관객들을 확보했다. 루이 14세는 몰리에르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몰리에르 극단은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 단체와 함께 파리에 있는 극장을 공유하게 되었다. 
 1665년에 왕이 몰리에르 극단을 왕실극단(the King's Men)으로 임명하자 그를 계기로 몰리에르는 이후 수많은 궁정 야외극과 희곡들을 써냈다. 
 몰리에르는 코르네이유와 라신처럼 제한적인 신고전주의 형식의 범주 내에서 작품을 썼다. 그래서 그가 쓴 다수의 작품들 속에서 대화는 운을 맞춘 2행 연구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은 위트 있는 대화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간파하는 예리한 시각을 파르스적인 유머와 결합시켰다. 그의 극 속에 등장하는 구두쇠, 염세주의자, 심기증 환자들은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여전히 이해 가능한 인물인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몰리에르의 작품 속에서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영향력을 발견했는데 특히 등장인물이 유형 인물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확인했다. 예를 들면 '수전노'에 나오는 아르파공은 판탈로네(Pantalone)를 연상시키는 탐욕스러운 늙은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젊은 여성에게 구애하며, 지참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딸을 노인에게 시집보내려고 한다. 그의 지나친 욕심은 자식들의 행복에 근본적인 장애가 된다.
 몰리에르의 주요 대표작은 '상상병 환자, '수전노, '따르튀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