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연극의 출현
기원전 7세기 말에 레베에서 태어나 기원전 6세기 초기에 코린스(Corinth)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천부적인 하프 연주가요 시인인 아리온은 디튀람브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아리온은 디튀람브의 형식에 중요한 변화를 완성하여 그것이 구술 부분과 음악 부분이 서로 교차하는 한층 연극적인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아리온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스피스라고 불리우는 한 공연자는 기원전 6세기경에 디튀람브의 코러스 무리에서 빠져나와 무대 위에 혼자 올라선 한 명의 배우가 됨으로써 디튀람브를 비극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스피스는 최초의 배우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브극작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에 사용되는 세스피안(thespian)이라는 용어는 '배우(actor)'의 유의어로 세스피스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배우'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히포크리테(hypokrite)로 이 단어는 '대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 연극의 기원에 대해서 스토리텔링 및 기타 유형의 공연까지 포함시키는 다른 이론들도 있다고 하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서론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그리스의 철학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이 흉내를 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몇몇 동시대의 연극사가들은 고전시대 이전에 이야기꾼(storyteller)들이 인기를 끌었던 관계로, 한 이야기꾼이 디튀람브 공연 때 첨가가 된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연극적인 대사 주고받기로 발전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론들이 상호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모든 이론들은 그리스의 연극과 종교와의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경의 연극
그리스 연극과 그리스 종교
그리스 연극은 그리스 종고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테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종교가 일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세기 동안 그리스 사람들은 제신들을 숭배하는 종교를 발전시켰다. 그 중에서도 제우스는 그의 아내인 헤라와 더불어 신중의 신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제신들이 모두 똑같이 전지전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제신들이 인간을 보호해 주고 미래를 예견해 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의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에서 자신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신들에게 경배를 드리는 축제가 매년 거행되었다.
연극은 특정 종교 축제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연극적인 각종 행사는 종교적인 제례이면서 동시에 여흥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이와 같은 종교와의 연관성 떄문에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연극공연에 참여헀다. 기원전 5세기 중엽의 아테네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가 기원전 450년에 연극을 관람할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제신기금을 제창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상류계층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류층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참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디오니소스 축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종교-연극적(religious-theatrical)' 행사의 중요성으로 연극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연극적인 축제기간 동안 모든 상거래는 중단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도 멈추고 정치적인 사건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중에서 한 축제가 아테네의 연극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디오니소스 축제(City Dionysia)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3월 말 경 꽃피는 봄에 시작된다. 기원전 534년 비극이 디오니소스 축제에 공식행사로 첨가되었고 기원전 486년 희극과 사티로스극과 같은 극형식들이 추가로 첨가되었다.(사티로스극이란 기원전 501년에 첨가된 짤막한 풍자희극을 말함).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7~8일 동안 거행되었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주요 연극 관계자들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프로아곤(proagon)에 모습을 드러낸다. 프로아곤이란 앞으로 있을 연극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등 선전용으로 제작된 일종의 예고편 공연이다. 퍼레이드와 디오니소스 경배의식이 하루나 이틀에 걸쳐 거행되고 나머지 5일은 디튀람브와 연극을 위해 쓰여진다. 나머지 5일 중 이틀 동안은 열 편의 디튀람브 코러스가 공연되는데 아마도 그 중의 하루는 성인 남성들로 구성된 코러스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하루는 소년들로 구성된 코러스에 의해 배당된다. 마너지 3일은 비극과 사티로스극에 배당이 되는데 한 명의 극작가가 쓴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사티로스극을 한데 묶어 사부작(teralogy)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486년 디오니소스 축제에 첨가된 희극이 처음으로 언제 무대에 올려졌는지에 대한 중요한 논쟁이 있었다. 과거에 연극사가들은 축제기간 동안의 하루하루는 각각 다른 극작가들에 의해 쓰인 다섯 편의 희극에 배당이 되었다고 믿었다.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한 편의 희극이 디튀람브와 비극들이 공연되었던 닷새 중에 첨가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연극이 종교, 문화 행사였떤 관계로 연극상연의 조직은 국가가 맡았다. 아콘이라고 하는 담당 행정관은 다음 축제가 거행되기 11개월 전에 연극작품을 선별했다. 아콘은 선별된 각각의 극작가들에게 오늘날 제작자에 해당하는 코레구스를 한 명씩 지목했다. 오늘날 상업연극의 경우 제작자는 제작을 위하여 재원을 끌어 모은다. 기원전 5세기 부유층이었던 코레구스는 리허설, 의상, 음악반주가 등 코러스와 관련된 일체의 비용을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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