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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연극사

로마연극의 이해

by #조디찬 2023. 7. 9.

로마 희극은 대개 일상 가정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신희극 때)

배경 : 공화정과 로마 제국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대략 기원전 750년경에 건립되었고,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방에 위치한 에트루리아(Etruria)라는 나라의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통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500년경에 왕정은 몰락하고 그 대신 공화정이 들어서 향후 500여 년 간 지속되었다. 공화정 초기에 로마에는 세 계급이 있었는데, 그 중 맨 상위는 귀족층으로, 이들은 주로 원로원을 통하여 나라를 통치했던 페트리시안즈(patricians)라고 하는 부유한 상위 지배 계급이었다. 그 다음은 플레비안즈(plebeians)로 이들은 평민 계급이었으나 당을 통해 한 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대략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최하위층인 노예 계급이었다. 자유 신분의 사람들에게 공화정에서는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제공했다. 

 

계층순서

페트리시안즈 > 플레비안즈 -> 노예계급

 

기원전 1세기에 로마 공화정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조짐을 보이게 된다. 이 시기에 로마는 너무 광대한 땅을 통치하다 보니 자연히 스스로의 정치 체계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도처에서 발발하는 반란과 전쟁으로 편한 날이 없었다. 이러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줄리어스 시저의 강력한 독재도 가능했고, 그는 결국 부르투스가 이끄는 일당의 손에 권좌를 찬탈당하게 되며, 또 부르투스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의 연합군의 손에 패배를 당하게 된다.(이 일련의 사건들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시저의 기본 줄거리가 된다)

 이러한 와중에 공화정은 몰락하게 되고, 기원전 27년에 로마는 한명의 강력한 통치자가 이끄는 왕정으로 전환하게 된다. 

왕정은 향후 수세기 동안 지속되며, 문명화된 거의 모든 서방세계가 로마의 통치하에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 동안이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 연안의 거의 모든 땅과 오늘날의 스페인, 영국, 프랑스, 그리고 발칸반도를 포함한 유럽 전 지역을 다스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인들은 항상 실용적이었다. 재산과 결혼, 그리고 상속 등을 다룬 로마의 법은 여전히 서양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로마 인들은 모두 위대한 공학도들이며 건추가들로 그들은 축조한 하수도와 도로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유럽의 주요 고속도로들은 대부분 로마인들이 닦아 놓은 도로를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비록 현재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로마인들이 만든 하수도는 아직도 건재하다.

 로마의 역사에 있어서 종교는 가장 중요하다. 로마인들은 로마식 이름을 한 그리스 신들을 포함하여 수 많은 제신들은 섬겼다. 로마인들의 다신전인 판테온(법신문화, 연극에도 영향)에는 그들이 정복한 지역의 토착민들이 섬기는 제신들이 계속해서 첨부되었다. 로마인들도 종교적인 축제를 무대화했는데, 이것이 고스란히 극장문화를 탄생시킨 초석이 된다. 

기독교의 부상으로 로마대제국은 일대 변혁을 맞게된다. 처음에는 기독교도들을 박해했던 로마였지만, 서기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창립자)가 기독교롤 개종하면서 부터 로마는 기독교 국이 된다. 

 

로마 문명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1. 로마의 법전

2. 하수도 및 도로

3. 기독교(콘스탄틴) 

 

로마시대의 극장문화의 발전과정 : 대중 연희의 영향

1. 오락위주의 연극 -> 대중 연희(popularentertainments)를 관객들이 더 선호 

2. 아테란 파르스(domestic farce) : 가정소극

3. 에트루리아인들의 연희 -> 이에 의해 로마인들의 연극이 시작됨.

4. 아텔란 파르스(Atellan farce)  -> 특징 : 마임, 주로 과장된 가정 문제들을 다룬 일종의 즉흥 코미디, 고정배역들이 반복해서 출연 

 로마인들은 극장예술에 새로운 방식을 창안해 내지 않았지만, 극장예술을 고급예술로 육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그리고 아텔란 파르스 등으로부터 극장예술의 실제를 차용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에 맞게 토착화된 형태로 적용하여 발전시켰다. 따라서 로마시대는 극장예술을 대중연희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연극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로마시대에 극장예술이 팽창하고, 로마의 극장이 거의 7세기 동안 번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로마 극작가의 작품들은 많은 편이 아니다. 플라우투스와 테렌러우스의 희극과 세네카의 비극 몇 편이 전해질뿐이다. 이들 이전의 극작가들에 대해서는 파편적으로 충분치 않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 최초의 극작가로 알려진 사람은 당시의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작품을 쓴 루비우스 앤드로니쿠스로 비극과 희극 모두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는 로마에서가 아닌 그리스의 어느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 시민으로 태어난 최초의 극작가는 그나이우스 나이비우스이다. 그나이우스는 특히 로마적 주제를 극화한 희극작가로 주목받는다.

 

연극사 

루디 로마니(로마축제)에 희극과 비극을 정규고연으로 추가(기원전 240년)

플라투스의 사이비인간(기원전 191년)

테렌스의 포르미오(기원전 161년)

비트루바우스의 건축(기원전 90년)

로마에 첫 상설극장 등장(기원전 55년)

호레이스의 시학(기원전 24년)

로마제국 전역에 극장과 원형극장 시공(30~200년경)

세네카, 로마 비극 집필(기원전 24년) 이때, 세네카는 로마시대 유일한 비극작가이기도 하다.

카르타고 펴의회는 주일날 교회대신 극장에 간 사람들을 파문시키고, 배우들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포고(3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