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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연극사

로마시대의 비극작가와 연극비평가

by #조디찬 2023. 7. 9.

로마의 비극 작가에 대해서는 극소수의 자료가 남아있을 뿐이다. 학자들은 기원전 1세기 이후에 쓰인 비극들은 많은 대중들 앞에서 공연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로마 사회가 비극보다는 훨씬 눈요기 거리가 풍부한 대중 여흥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비극 작가 중 주목할 만한 사람은 바로 세네카이다.
 

세네카(루시우스 아내우스 세네카)

현존하는 작품을 가지고 있는 로마의 주요 비극작가는 세네카(Seneca, c. 4 B.C.E. ~ 65C.E)이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네로 황제의 선생이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생각된다. 
 세네카의 생애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가로서 그는 근엄한 스토이시즘의 신봉자로 절제와 평온의 철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그는 미식가요, 스토아 철학에서 엄격히 금하는 고기를 즐기는 등 쾌락을 탐하는 자였다.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그가 살던 당시의 로마 시대의 특성을 투영하는 듯하다.
 세네카의 작품들이 무대 공연용으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참석한 연희 따위의 특별 행사 때 암송용으로 주로 쓰인 소위 서가연극(읽기 위한 연극)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세네카의 연극들은 그리스 비극들과 매우 흡사하다. 그리스 비극처럼 코서르를 사용했고, 코러스는 직접 연기에 뛰어들지 않았으며, 폭력장면을 강조했다. 또한 세네카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비극적 결함(하마르티아)이 없었다.
세네카의 등장인물들은 한 가지 모티브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고급멜로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초 자연적인 존재들이 덤처럼 등장하여 이러한 멜로드라마적인 특성을 강화시킨다. 세네카의 대본에는 대개 장문의 자세한 독백이 삽입되어 있고, 도덕적인 격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세네카의 영향들

1. 5막 구조의 효시(5막극의 시초) 
2. 유령이나 마녀들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등장
3. 독백과 방백의 사용 
 

로마의 연극비평 

로마의 드라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극비평(dramatic criticism)도 다른 사람의 논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저를 기본으로 하였다. 로마시대의 가장 유명한 극비평 및 이론가는 호라티우스로 '로마의 아리스토텔레스'로 통하기도 한다. 호라티우스의 '시학'은 현존하는 유일한 라틴어로 된 극비평 관련 논저이다. 아리스토테레스보다 먼저 르네상스의 학자들과 극작가들에게 알려진 호라티우스의 이 논저는 르네상스 극이론과 연극의 구조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호라티우스(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자유 방면된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호라티우스(Horace, 65~8B.C.E)는 버질을 비롯하여 초기 로마 제국의 일급 문학가들과 두루 교분을 쌓은 시인이었다. 그는 '시학'으로 유명한 만큼이나 '풍자'와 '에프데스'등과 같은 서정시로도 유명하다.
호라티우스는 극시의 역사와 이론을 섭렵했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깊이도 덜하고 세밀하지도 못한, 호라티우스는 희극과 비극은 절대로 혼합되서는 안된다는 식의 법칙을 강조했다. 그는 한 편의 극은 5개의 막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세 명 이상의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무대 위에 등장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으며, 또 플롯을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들의 사용을 금했다. 코러스는 극적 행위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며 철저히 도덕적인 목소리로 '선하고 현명한 조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라티우스는 드라마의 목적이 '감동과 쾌락'에 있다고 느꼈다. 즉, 극작가들은 관객들에게 교훈과 재무 둘 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동안에 강조된 또 하나의 호라티우스의 주장은 품격, 적격, 데코람이라는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품격이란 등장인물들의 언행이 나이와 성별, 그리고 사회적 지위 내지는 정서적 상태 등에 상응하는 전통적인 생각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라티우스는 작가들이 극단적인 정서를 피하고 진실되도록 노력하기를 염원했다.
 


로마시대의 연극 제작

도미누스라고 하는 극단의 우두머리 
무대 연극에 고용되는 극단은 최소 6명의 남성단원으로 구성 
로마의 연기는 세밀한 팬터마임과 신체동작 등 로마 극장의 규모에 걸맞은 행동과 유려한 발성에 강조점을 두었다.
로마인들은 한 가지 유형의 배역과 잘 가다듬어진 정형화된 한 인물에 통달한 배우르 선호했다. 
로마의 전형인 극장의 특징은 무대 위의 구조물 스케나, 무대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관객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 연극의 쇠퇴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궤를 같이한다.
기독교의 부상을 꼽을 수 있다.
 

요약

로마인들은 드라마와 극장예술로부터 종교축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풍습을 많이 차용했지만, 그것을 수정하여 로마 특유의 것으로 만들었다. 로마인들은 위대한 작품들을 생산해내지 못했지만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희극과 세네카의 비극들이 후대에 끼친 막대한 영향으로 중요시된다. 정규극을 발전시키는 대신 로마 문명은 대중 연희를 발전시켰다.
호라티우스의 '시학'은 로마 극작가들을 위한 극작규칙을 설정하기 위해 쓰였다. 로마의 극장은 보통 거대한 실외 건물이다. (그리스 극장과는 달리) 로마의 극장들은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되어있다. 그 주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교하게 장식된 무대 배경 장치의 구조물과 거대하게 올려진 단상무대이다. 로마인들은 배경전환을 위해 최초로 커튼을 사용했다. 그리스와는 달리 극장에서 공연하는 남성 배우들은 전문 직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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