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예술/연극사

중세유럽의 연극 도덕극과 세속극

by #조디찬 2023. 7. 12.

도덕극

 

도덕극의 특징

1. 우의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도덕적 교훈을 주려고 한다.

    EX) Every man이라는 작품 

2. 우의적 수법 속에,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개념을 상징

한 등장 인물은 자비를  상징하고, 다른 인물은 고결을 상징하고, 또 다른 인물은 탐욕을 상징하는 등의 수법이다.

3. 등장 인물들은 종종 여정을 떠나며, 여행을 통해 도덕적 교훈을 배우게 된다. 그리하여 몇몇 학자들은 도덕극을 여정극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4. 주인공은 평범한 남자와 여자다

5. 마음속에서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힘 사이의 투쟁에 관한 내용이다.

6. 주제는 죽음의 불가피성이며 죽음 앞의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아이러니한 모습)

 

 

에브리맨 

에브리맨은 가장 인기 있는 도덕극의 한 예이다. 이 극에서, 등장인물로 아무개 씨 - 인간애를 상징하는-는 갑작스럽고도 예기치 못하게 하나님의 전령인 사자(Death(로부터 그의 지상에서의 삶이 끝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죽음을 준비하지도 못한 채 저 세상으로 홀로 가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개 씨는 그와 동행할 동료를 구하게 된다. 그는 추상적인 개념을 상징하는 많은 등장인물들 -재물(Worldly Goodss), 친지(Kin), 아름다움(Beauty) 등 - 에게 부탁하지만, 믿음(Good Deeds)을 제외한 그 누구도 제 세상으로 그와 함께 동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에브리맨과 관객들이 배운 교훈은,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오직 믿음만이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극의 제작

비록 중세 도덕극의 주제는 종교적이었지만, 16세기 초반에 이르면 그것들은 직업적 배우들에 의하여 공연된다. 따라서 신비극이나 순환극과는 달리 직업 배우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종교극에서 차츰 탈피하여 중세 말에 이르면 도덕극은 세속극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에브리맨'은 도덕극의 무대 기법이 순환극의 기법과 유사했으며 중립 무대 구조의 동일한 개념을 토대로 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의 세속극 : 대중연희 형식

대중적인 오락물로 분류되는 세속극은 대체적으로 코믹하고 불경스러웠다. 

-> 이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함. 

 유럽에 있어 군주제의 출현과 함께, 비종교적인 오락 거리는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 왕실을 위해 공연하였던 흥미를 끄는 중세 드라마 형식은 거리의 연극(street pageant)이었다. 15세기경에는, 군주의 방문을 기리기 위해서 우의적, 성서적, 그리고 신화적 극화가 도시의 길을 따라서 공연되었다. 이것은 내레이션을 적절히 사용한 그림 배경의 무언극이었다.

 세속극이 전례극과 순환극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공연되었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세속극의 특징 

1. 전문 극단의 전통은 순회 극단, 무언극 마술사, 그리고 줄타기 곡예사에 의해서 명맥을 유지

2. 세속적인 것과 본능적인 것이 들어 있었다. 

3. 축제의식에서 세속극은 민족적 영웅의 업적을 극화한 민속극(folk plays)과 인간의 보편적이 나약함을 코믹하게 묘사한 파르스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출현했다. 

4. 희극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들의 결점과 스캔들을 강조한다. 

 

종교극의 쇠퇴 

종교 개혁의 거센 파도가 널리 퍼져 절정에 이른 16세기에 교회세력의 약화는 종교극이 소멸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이었다. 로마 가톨릭은 종교극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였는데, 그것은 교회의 세력을 약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례로, 로마 가톨릭은 1548년에 파리에서의 종교극을 불법화하였다. 개신교는 종교극을 가톨릭교의 도구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영국 국교회의 우두머리인 엘리자베스 1세는 1559년에 영국에서의 종교극을 금지시켰다. 

 종교극이 쇠퇴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종교극에 있는 세속적인 특성들이 마침내 종교적인 제재를 압도하였다는 것이다. '제2 목자의 연극'의 파르스적인 요소와 '에브리맨'에서 인간의 투쟁에 대한 초점은 르네상스 시기에 훌륭한 세속극이 발전할 수 있었던 초석이 되었다. 

 

요약

중세 전반기에는, 유랑 극단이 연극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후, 중세말에 이르러 연극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다시 부활되었다. 종교적 의식에 첨가된 음악적 극적 삽입은 전례극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라틴어로 쓰여 성서적 사건을 극화한 이러한 연극은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에 의해 공연되었다. 

 14세기에는, 자국어로 된 연극, 그중에서도 종교극이 발전했다. 일련의 성서적 이야기를 묘사하는 신비극 혹은 순환극은 북부 영국에서는 길드에 의해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는 종교 자선 단체에 의해 야외에서 공연되었다. 연국,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신비극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이동식 수레 마차 무대에서 일반적으로 공연되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무대 장치가 된 일련의 맨션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크고 넓은 공연 지대가 일반적이었다. 자국어로 된 종교극의 또 다른 형태은 기적극은 성자들의 전설 담을 공연하였다. 범주화시키기가 가장 어려운 중세의 극형식은 도덕극으로, 우의적인 등장인물들과 도덕적 교훈을 드러내면서 전문적인 배우들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중세의 연극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요구하면서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극적 기법을 사용하였다. 상징을 자주 사용하였고 시간과 장소 전환의 자유를 마음껏 이용하기도 하였다. 

 세속그 또한 중세에 성행하였다. 중세 후반기에는, 민속극과 파르스가 발전했고, 전문적인 배우들은 군주들의 궁정에서 연기하였다. 세곡극의 영향은 순환극의 익살스럽고도 민속적인 요소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중세 연극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에피소드 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