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연극의 형태
감상희극과 최루희극
18세기 영국의 감상희극(EX 과속스캔들, 써니 같은 극)은 또 하나의 대중 공연의 한 형태인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제작되고 있는 장르이다. 중산층의 도덕성을 재수긍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감상희극은 왕정복고 희극과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특히 프랑스의 감상희극은 달콤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그 특징으로 극중에서 다루어지는 도덕적 인물은 심각한 불행의 위협에 처하지만 결국은 이후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결말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연극을 최루희극이라고 불렀는데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이 관객들의 감상적인 눈물을 유발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의 진지한 극과 희극이 보여준 감상성과 도덕성에 대한 강조는 18세기의 철학적 견지에서 파악될 수 있다. 로크(Loke)와 홉스(Hobbes)의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란 이성적이며 완전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사회가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감상희극은 중산층 비극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도덕적 낙관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
18세기 후반, 다수의 독일 극작가들은 신고전주의 이상에 저항하며 감상희극과 부르주아적 비극이 추앙하는 극명한 도덕주의에 의문을 제기했다. 레싱(Lessing)은 자신의 논푼 비평서인 '함부르크 연극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행했던 신고전주의 해석에 반대르 표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극작술에는 존경을 표했는데 독일인들의 셰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시대에 대한 존경은 슈투름 운트 드랑(Strurm und Drang, 질풍노도)으로 망명되는 문예운동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시기의 극작가들은 극적 규칙을 거부했다. 이것은 낭만주의의 전초전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중 일부에 해당하는 작가들은 셰익스피어를 계승하여 삽화적구성이나 장르혼합, 폭력 장면의 무대 재현 등을 작품속에서 구현했다.
결국이 '슈투름 운트 드랑'운동은 19세기에 도래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의 선두주자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사실주의와 반사실주의
18세기 중반, 이탈리라에서는 코메디아 델라르테가 나아갈 방향을 놓고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와 카를로 고치(Carlo Gozzi) 두 극작가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골도니는 코메디아 델라르테가 인공성을 덜어야 한다고 했으며(사실주의), 고치는 그 장르가 보다 환상적으로 표현(반사실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격렬한 논쟁 형식은 사실주의와 반사실주의로 양분되는 19세기적 상황을 예견했다.
골도니는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빈약한 시나리오 작품 수준에서 문학성이 있는 완벽한 대본 작품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그는 연극이 환상성에서 탈피하여 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지길 바랬다. 그로 인하여 가면의 사용이나 즉흥극적인 요소 들을 억제했으며, 등장인물들은 보다 현실에 가까운 인물로 구현했다.
고치는 골도니와 최고의 경쟁관계에 있던 극작가로서 고칙라 느끼기에 골도니가 표방하는 사실주의적 접근 방식은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세속적이고 진부하며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었다. 고치는 몽환극을 제안했으며, 산문과 시를 혼합시키고 즉흥적인 연기와 의도적인 연기를 결합시키는 변형을 시도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스타그 왕' 과 '녹조'가 꼽힌다.
18세기 연기스타일
18세기 연기에 대한 지배적인 접근 방식은 대개 과장된 것이라거나 낭독식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이는 웅변술을 강조한 다는 의미이다. 무대에서의 움직임의 정형화된 방식은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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